크리스마스 이브

Joshua/일기 2010.12.24 댓글 Joshua95

크리스마스 이브라 일찍 회사에서 나왔는데 이 추운날에 버스가 안 와서 한시간 가까이를 오들오들 떨며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강남 거리 한 가운데 있는 정류장에서 커다란 기차 마냥 꾸물거리는 버스들과 북적북적한 사람들 속에 서 있자니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조금전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려고 서점에 들렀었습니다. 카드 코너에 가서 카드를 고르는데 올해는 유독 성탄의 의미를 담은 카드가 보이질 않습니다. 화려하고 익살스럽고 요란한 카드들, 산타와 눈사람과 곰돌이 캐릭터들 속에서 잠시 내가 무슨 착각을 한 것 마냥 멍해집니다. 겨우 한쪽 귀퉁이에 목자와 양 그리고 구유가 그려진 카드를 찾았습니다. 그 백가지도 넘을 것 같은 종류 중에 성탄 내용이 담긴 카드는 단 세가지 종류 뿐입니다. 주위 많은 사람들이 카드들을 고르며 즐거워하는데, 제 맘은 그다지 편하지가 않습니다.

마침 오늘 점심 식사 중의 팀웜들과 대화가 떠올라 더 씁쓸합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성탄절에 christmas 라는 용어보다는 holiday 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다문화 다종교를 배려해 주자는 취지에서랍니다. 그래서 "merry christmas" 대신에 "happy holiday" 라고 하자는거지요. 팀원들과 논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주객이 바뀐거 아닙니까. 예수님을 기념하자고 만든 날에 예수님 얘기를 하지 말자니요.

이제 두달 지난 딸들 덕분에 이번 성탄절은 참으로 실제적인 상상이 가능합니다. 목을 가누지도 못하고 모든걸 엄마에게 의지해야 했을, 두세시간이면 배가고파 힘을다해 울어야 했을, 배설물에 뒤섞여도 엄마의 손길만을 기다려야 했을, 하나님이지만 모든 것을 피조물인 인간에게 의지해야만 했던 그 나약한 존재로 기어이 태어나신 예수님. 마치 내가 이제 두돌 지난 작은 아들에게 모든 것, 먹고 자고 입고 생활하는 하물며 내 목숨까지도 저 어린 아들에게 내어 맡겨야 한다면 하나님의 그 심정과 결단과 사랑을 조금이마마 이해할 수 있을까요. 겨우 이런 나를 위하여, 겨우 이 정도의 우릴 위하여 말입니다.

잘 차려입고 밝은 웃음을 머금고 캐롤이 떠들썩하게 울려퍼지는 강남의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저만 혼자 슬픔을 머금고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자 버스를 기다립니다.

- 2010.12.24 Joshua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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