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한잔

Joshua/일기 2009.11.05 댓글 Joshua95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철을 타고 퇴근을 한다. 여의도로 회사가 이전 한 후로는 5호선에서 3호선으로 한번 갈아타야 되어서 책 읽기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요즘 심취해 있는 함석헌 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은 갈아타기 위해 걸어가면서까지 열심히 보고 있다. 

 마침 3호선을 갈아타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옆에 웬 할아버지가 부시럭부시럭 무언가를 열심히 드시기 시작한다. 아마 저녁식사 전이셔서 그런지 쩝쩝 무언가를 맛있게도 드신다. 책을 읽다가 부시럭 소리가 거슬리지만, 그래도 어르신 식사하는데 눈치 줄 수 도 없고 그냥 꾸욱 참아본다.

 조금 있으니 드시던 것을 다 드셨는지 부시럭 부시럭 봉지를 찾아서 휴지를 넣으시는 할아버지. 다시 한참을 뒤척거리셔서 무언가를 찾다가 여시는데, 사이다 캔인 모양이다. 괜히 책 읽다가 책에 집중 못하고, 그렇다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만 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눈치를 보니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다시 열심히 찾으신다. 궁금해서 살짝 옆을 쳐다보니, 종이컵을 꺼내시는 모습이 보인다.

 순간 저 사이다 할아버지 드시기에 너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불안해 진다. 아니나 다를까, 종이컵을 꺼내드신 할아버지가 옆에 있던 나의 옷깃을 당기신다. 사이다 한잔 받으라고 권하신다.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된다.
 "아니 괜찮습니다."
 "한 잔 받아요."
 "아니요. 진짜 괜찮습니다."
 "아, 이거 많으니까 걱정말고 먹어요."
 "아.. 그게 아니라.. 예.. 감사합니다." (ㅠ.ㅜ)

 얼떨결에 사람들 가득찬 만원 전철에서 종이컵을 하나 받아들고 할아버지의 사이다를 받는다. 왠지 예의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 나름 고개도 돌리고 한잔 받아서 쭈욱 들이 마신다. 할아버지도 그리 마시는 내 모습이 기특하셨던지, 학생이냐고, 결혼 했냐고, 아이는 있냐고, 학교는 어디 나왔냐고 쭈욱 물어보신다.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장가만 안 갔으면 손주 사위 삼고 싶으시는 눈치시다.

한잔 마시면서 나누는 그 이야기가 정겹기도 하고 해서 이런 저런 얘기하다보니 벌써 금호동. 전철을 내리면서 전철 안에서 어르신께 한잔 받아 들이키는 내 모습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소주가 아닌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혼자 중얼거려본다. 이것이 일상에서 얻는 즐거움이로고. 왠지 흐뭇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어온다.

From Joshua(0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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