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샘이가 철원에 있다 보니, 매주 철원을 갑니다. 금요일날 밤에 가서 주일날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날은 토요일에 결혼식에 다녀오느라 늦게 와서, 주일 예배를 철원에서 드리고 오후에 와이프와 함께 서울로 넘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철원에서 서울가는 기차를 타려면 신탄리라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 합니다. 아내와 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정류장에는 몇몇 분의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중 바닥에 털썩 앉은 분이 있었는데, 옷차림새가 누추해서인지 한눈에 띄었습니다. 정류장 가까이에 그 분을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가서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레
"아저씨~ 담배 있어요?"
라며 저에게 물어봅니다.
"아니오. 담배 없습니다."
답변을 드리고 그래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아저씨 옆에서 아내와 함께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조심스레 그 아저씨를 보니, 다리 한쪽에 철심으로 만든 의족이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철원 인근은 전쟁 후 지뢰가 많이 있는데, 농지 개간을 하면서 지뢰에 다리를 잃은 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이 아저씨도 그러한 사람 중에 한 분인가 봅니다. 그날은 무슨 일이 있으셨던지 약주도 한잔 하시고 눈은 풀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 철심 아저씨는 지나가는 몇몇 사람에게 담배 하나만 달라고 부탁을 하십니다. 하지만 좀처럼 주위 분들은 눈을 마주치기 싫어하는 듯합니다. 옆에 있던 저와 아내에게도 재차 담배 있는지를 물어봅니다.
저는 이 아저씨가 괜히 시비를 걸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단호하게
"아저씨, 저 담배 안 핍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낮부터 술을 드시고, 쯧쯔.'
내심 한심한 마음이 앞섭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입니다. 마침 이 아저씨 뒤에 한 사람이 큰 배낭을 메고 들어섰습니다. 역시나 담배 하나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 큰 배낭 아저씨는 담배 없노라고 팔을 저으시더니 도망치듯 어디론가 가십니다.
옆에서 안타깝게, 한편은 한심하다는 듯 그 광경을 훔쳐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저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아까 도망치듯 사라졌던 그 배낭 아저씨가 슈퍼에 가서 담배를 한갑을 사오셔서 건네는 겁니다. 순전히 그 철심 아저씨를 위해서 말입니다.
제가 마치 성인 군자 마냥 혀를 차며 한심스레 철심 아저씨를 쳐다 보는 동안, 이 이름 모를 배낭 아저씨는 철심 아저씨의 부탁을 깊이 들으시고 직접 도움을 드리려고 작정을 하신 겁니다.
"몸에 해로운 담배를 사 주다니, 그건 몹쓸 짓이다." 라고 위안을 삼아 볼까 생각이 드는 지금의 제 자신이 참 괘씸합니다. 솔직하게 저는 그 순간 내가 사서 건네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그게 담배가 아니라 물이나, 약이었다고 해도 저는 단지 내게 없노라 손을 휘둘르며 미리 챙기지 않은 그 사람을 내심 나무라고 있었을 터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라는 것. 그 사랑을 배우고 싶다고 늘상 입술로만 고백하지만, 도무지 자신이 서질 않습니다. 저의 얕은 이 마음 가짐으로 도무지 그 깊이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그 배낭 아저씨는 저보다 한수위의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저는 언제나 깊이 있는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만일 내일 동일한 상황에 놓인다고 해도, 저는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From Joshua(0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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