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아장 아기가 달려왔다

Joshua/일기 2009.11.05 댓글 Joshua95

샘이가 태어나고, 철원 처가에서 2달 가량을 보내고 서울 집으로 데려왔을 즈음 마침 읽고 있던 김승옥 산문집의 아래의 글이 내 마음을 너무도 잘 대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스크랩을 해 두다.

 
From Joshua(04-10-04) 샘이 서울온지 이틀되던 날.

 

" 우주선이 달을 향하여 가고 있는  TV 중계방송을 보고 난 후 잠자리에 들어서도 지금도 그들은 외롭게 갇힌 채 공포로 가득찬 어두운 허공을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느끼던 감동도, 달보다도 수억배나 더 먼 우주의 저 끝으로부터 신비와 공포의 암흑 속을 혼자서 아장아장 달려 이제 막 여기에 도착한 아이를 보는 순간의 감동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 같은 자를 믿고 저 까막득한 곳으로부터 험난한 어둠 속을 달려 네가 여기까지 왔구나! 며칠 후엔 퇴원하여 아이가 이 세상에서 맨 처음으로 살게 될 방을 단장하기 위하여 집으로 가면서 나는 그런 감동에 싸여 있었다.
그런 느끔에 싸여 있는 나의 눈에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추악한 죄인들 같이만 보이던 행인들 하나하나가, 내 아이처럼 강하게 혼자서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들이라는 각성으로 아름다워 보였고 나 자신마저도 그래 보였다.
그러나, 아니 그러기 때문에, 집을 향해 밤길을 가고 있는 동안 나는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마련해 놓은 것의 초라함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의 집, 우리의 방도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맞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고 생각되었다. 아이가 가지고 놀 장난감, 아이가 볼 그림책, 아이가 앉아서 공부할 의자, 아이가 다닐 학교, 아이를 가르칠 선생님, 아이가 건너갈 한길, 아이가 놀 공원, 아이가 치료받을 병원, 아이가 드나들 관청, 아이를 보호해 줄 제도와 법, 아이가 즐길 풍속, 아이가 살아갈 조국, 아이가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
우리들의 아이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없이 많지만 아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완전한 믿음에 비하면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해 둔 것들은 얼마나 불완전하고 볼품없는 것인가! "


김승옥 산문집 "내가 만난 하나님" 아장아장 아기가 달려왔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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