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시골 중의 시골이다.
대한민국 중에서 남쪽 변두리 전라남도,
전라남도 중에서 지리산 산속 마을 구례,
구례 읍내에 나가면 언제나 촌뜨기 취급 받던 산동.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다.
지리산 노고단 밑에 자리잡고 있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 산동.
그 곳에서의 나의 어린 시절은, 요즘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산골 추억들로 가득하다.
혹 잊혀질까 그 추억들을 하나 하나 정리해 볼까 한다.
그런 생각으로 어린 시절 사건들을 추스려 보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다.
나의 생애 처음으로 각서를 썼던 그 날의 일.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인 사람들이 꼭 있다.
시골 할머니 중에 성질 사납고 무서운 할머니가 꼭 한분 있다.
거기에 정신을 놓아 버린, 소위 '미친' 아주머니.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남자 아이들의 공포의 대상인 'x알 까는 아저씨' ^^
우리 동네의 'x알 까는 아저씨' 는 정말이지 공포 그 자체였다.
술을 좋아하셨던 이 아저씨는 항상 술에 취해서, 아이들을 붙들고 장난을 하셨던 것인데.
물론 그 장난도 '어디, 이녀석 많이 컸나 보자' 정도 였지만.
지금 이야 아저씨 장난 인 줄 알지만, 그때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진지했던지.
아저씨가 아이들 x알을 따서는 구어먹는 다는 둥 아이들에게는 이 아저씨에게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 뿐이었다.
우리가 수영을 하던 연못 가까이에 아저씨 집이 있었는데,
수영을 하다가 아저씨가 집 문을 열고 나오면, 모든 아이들이 긴장을 하게 된다.
아저씨가 장난 삼아 '네 이넘들' 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모든 남자 아이들을 '으아아' 고함을 지르며 연못에서 뛰쳐나와 정신없이 도망을 가야했다.
어느 해, 우리집이 가까운 옆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사하는 곳이 바로 그 공포의 '불 아저씨' 집 옆 집이었다.
이미 결정된 이사에, 그 이사를 막기에는 이제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나의 나이는 너무 어렸다.
그래도 두려워했던 것 만큼 불아저씨가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친근한 이웃으로 부모님과 친하게 지내셨으니 말이다.
김치를 담그거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어머니 심부름으로 아저씨 집에 가서 조심히 음식을 전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아저씨 집에는 자두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지대가 높았던 우리 집의 축사 쪽으로, 그 자두 나무의 가지가 닿아 있었다.
봄이 되면, 자알 익은 자두 열매는 우리 세 남매에게 최고의 유혹이었다.
어느날 나는 누나들에게서 잘 익은 자두 열매를 따 먹는 방법을 전수 받았다.
바로 축사 창가 쪽으로 가서 창가에 한쪽 발을 두고,
다리를 쭈욱 뻗으면 자두 나무 몸통에 또 다른 다리를 걸친 후에 안전한 모양새로 자두를 딸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누나들이 따 주는 자두를 먹으면서, 이 새로운 기술을 꾸준히 연마하였다.
이 기술로 자두를 몇번 따 먹고 나니, 나만 먹는다는 것이 웬지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날, 동네 친구 녀석들을 다 불러들였다.
영문 모르고 찾아온 5, 6명의 친구 녀석들에게, 나의 자랑스러운 노하우를 알려주기 위하여 축사 앞에 집결 시켰다.
알다시피, 지금처럼 여기 저기 과일이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친구 녀석들의 기대도 대단했다.
친구들의 기대하는 눈빛들을 받으며, 나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자두 나무로 다리를 쭈욱 뻗었다.
한쪽 다리는 축사 창틀, 한쪽 다리는 자두 나무 몸통으로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잘 익은 자두를 따려고 고개를 쳐들다가
문뜩 이상한 시선을 느껴서 아래를 쳐다보았는데,
이럴수가, 우리의 공포 대상 1호인 불아저씨가 내 다리 밑에서 위를 쳐다보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찔 한 순간도 잠깐, 화가 나신 아저씨는 내 다리를 잡고 끌어내리셨다.
난 2, 3 미터의 높이에서 끌어내려진 나는,
잡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아저씨를 뿌리치고 아저씨네 마당 쪽을 향했다.
마당을 지나서 장독대의 항아리를 짚고, 빠르게 아저씨와 우리 집 사이의 담을 넘는 순간.
아뿔사. 내 바로 앞에 마침 집 텃밭을 일구시던 어머니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것.
그제서야 내가 아까 축사에서 떨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으아아~~~" 고함을 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텃밭에서 일하시다가, "으아악"을 외치며 옆집의 담을 넘어온 어린 아들을 만난 어머니와
몰래 자두 따먹다가, 그것도 공포의 불아저씨에게 걸려서 온갖 비명을 지르며 담을 넘어온 아들과의
미묘한 시선도 잠시.
곧장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축사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착한 친구녀석들에게 '뛰어'를 외치며 일단 달렸다.
친구들과 우르르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곳이 초등학교.
미끄럼틀 앞에 모인 우리는 너무도 정신이 없어서 잠시 멍해있었다.
어떻게 해야되나?
이제 초등학교 2, 3학년의 나이로, 괴력의 불 아저씨를 상대로 어떤 타협을 해야 하는지 눈 앞이 캄캄했다.
미끄럼틀에 올라있다가, 저 멀리 보이는 친구집에 어머니가 들렀다 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대여섯 머리가 고민 고민해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결론이 막걸리다.
아저씨가 술을 좋아하는 것은 동네가 다 아는 사실.
아저씨에게 술값을 가져다 주면,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는 제안에 서로 가진 돈을 모아봤다.
300원이었던가. 딱 막걸리 한병을 살 수 있는 돈이 모이자 우리는 하나의 희망을 발견하며 안도했다.
아이들 모두와 함께 용기를 내어 아저씨 댁으로 갔다.
아직도 화가 나신 아저씨에게 가서, 우리가 모은 300원 가량의 돈을 내밀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술값이라도 하세요' ^^;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이 행동이 아저씰 더 화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아저씨는 우리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는 한명씩 나무에 묶었다. ^^;;
친구녀석 한둘씩 나무에 묶이는 걸 보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나의 차례를 기다리는데,
내 차례에 아저씨가 날 보시더니,
"넌 아까 나무에서 떨어졌으니 됐다. 집에 가~"
하신다.
괜히 내 잘못으로 매달리고 있는 친구 녀석들을 뒤로 한 체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니, 친구 녀석들이 날 얼마나 원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니, 나를 기다리고 계신 분이 어머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께서 회초리를 끊어 오란다.
회초리를 하나 만들어 들어가서 어머니 앞에 섰다.
그리고 정말 난생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회초리를 맞았다.
어머니께서도 아들이 남의 물건에 손을 대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괴로우셨던 것 같다.
회초리를 한참 맞고 나서, 어머니께서 종이와 펜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어머니가 불러주는 데로 그대로 적으라고 하신다.
그 내용은 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었다.
"나 OOO은 앞으로 절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지 않겠습니다.
만일 내가 다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낸다면, 어머니의 자식이 아닙니다. "
한참을 어머니의 눈물어린 꾸중을 들으며, 마음속에 다짐 다짐했던것.
다른 이의 물건을 다시는 탐하지 않겠다는 것.
그 사건이 지난 한참 후에도 어머니의 성경책 가방 앞 주머니에서 어린 나의 손으로 쓰여진 그 각서를 발견하곤 했었다.
지금 내가 남의 물건을 탐하는 않는가를 생각해 본다.
부끄러운 나의 지금 모습 속에서도
가물 가물 잊혀져가는 그 날의 그 각서가
내 삶을 정직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밑 바탕의 거름으로 남아 있다고 자부한다.
From Joshua(0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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