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달에 회사에서 커다란 사고가 있었습니다. 컴퓨터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잘 막아주어야 할 프로그램이 오동작하여 컴퓨터의 몇몇 파일을 삭제해 버리는 문제였지요. 문제가 발생하고, 대응팀과는 다른 몇몇 개발 부서에서도 고객 대응 요청이 전달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각 고객 집으로 방문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저희 팀에는 방문 지원 요청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저희 팀원들은 점심을 먹었지요.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고객 이슈가 커서 전사 대응으로 고객 지원을 하고, 필요하다면 무조건 고객 방문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공지가 떴습니다.
아직 저희팀까지 직접적인 고객 지원 내용이 하달되지 않아서 나름 긴장감 속에서 기다리는데, 첫번째 호출이 날아왔습니다. 고객 방문 지원 요청이었지요. 웜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장애 대응 차원에서 방문을 하는 거라면 훨씬 마음이 가볍습니다. 나름 사명감도 생기구요. 하지만, 이번처럼 저희의 명백한 잘못으로 인해서 가는 방문이라면 그 얼마나 괴롭고 힘들겠습니까. 어찌 되었든 방문은 피하고자 서로들 눈을 피하고 있는데, 팀장님이 첫번째로 저를 지목합니다. 방문 지원은 신뢰할만하고 온화한 사람이 가야된다나요. 게다가 제가 근속년수도 오래되었으니 가장 적합할 것 같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흐. 버럭했습니다. 왜 내가 가야합니까. 저보다 근속년수도 오래된 분들도 있고, 게다가 이전에 문제의 제품을 직접 개발 해 본 분도 있는데 왜 접니까. 저는 그 제품을 잘 몰라서 그냥 방문 나가기 어렵습니다. 주절주절주절. 결국 완강한 저의 반응에 팀장님은 급선회하여 다른 사람을 지목하였습니다. 그 분은 아주 쿨하게 가겠노라고 하셨고, 저는 일단 첫번째 방문 지원은 모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고객 요청이 많아지고 결국은 전사 직원 모두가 1주일 가까이를 휴일을 반납하고 출근하여 전화 상담과 방문 지원을 하게 되었으며, 대부분이 방문 지원을 해야 했으므로 첫번째 방문 지원을 누가 가냐의 논쟁을 별 의미가 없어져 버렸지요.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저에게 문득 "세상"은 참으로 미지의 머나먼 곳이었구나 생각됩니다. 마치 "유토피아"라는 단어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나아가서 싸워 이겨야 할 어떤 장소의 상징적인 곳이 "세상"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세상을 직장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직장 속의 그리스도인". 직장 속에서의 나는 어떠한 그리스도인 인가. 그저 신우회라는 모임의 회원이고, 식사 전 엄청난 속도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마치는 그리스도인. 이러한 생각을 하다보니, 갑자기 지난날의 고객 방문 지원 사건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어려워하고 마다하는 일들 가운데 희생으로 본이 되기 보다는 먼저 피하려고 급급하던 사람이 저였습니다. 누구보다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하고, 나의 생각과 소신만을 강요하려는 사람이지요. 나의 모습 중에 어떤 모습이 "그리스도인" 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을까요.
이재철 목사님은 "하나님을 앞서 가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뒤따라 가는 사람"을 얘기하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서 나를 드러내고자 욕심내지 않고, 나의 이익과 편안함 만을 추구하지 않고 성실함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 말이지요. 세상 속에서 아니 이 직장 속에서, 나의 생활 속에서 올바른 따라감, 기다림이 없다면 언제든 내 삶은 그냥 세상 속의 평범함 일 뿐입니다. 그러한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의 향기가 전혀 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짱퉁 악취만 풍겨나와 원본의 이미지만 훼손시키게 되겠지요. 직장 생활 속에서 성실함과 희생, 포용과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그리스도인"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나의 직장이 세상이고, 여기 나의 생활이 곧 세상입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자랑할 만한 삶을 살아내고 싶습니다.
- 2011.05.06 Joshua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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