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적 예방 주사 맞는 날을 기억하시나요?
그 날이 되면 반 전체가 초 긴장 상태가 되지요.
운동장에 병원차가 도착하면 평온하던 반이 온통 초조함이 감돕니다.
한반 한반 돌면서 간호사들이 방문하면,
수업은 들리지 않고 복도에서의 움직임들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는 순간
온 교실 안의 아이들은 숨이 턱 멈추는 듯 합니다.
드디어 오고 말았기 때문이지요.
절대 오지 말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피해갈 수 없는 주사 맞는 시간.
어떤 아이는 용감히 팔을 걷어 붙이고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앞 줄에 섭니다.
또 어떤 아이는 불안한 눈을 하며
어떻게 저 주사를 피해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급기야 우는 여자아이도 보입니다.
앞에서 주사 맞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곤혹입니다.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찡그리는 아이의 얼굴 속에서
나도 저 시간을 거쳐야만 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저 시간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언젠가는 맞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체념할 수 밖에 없는 어린 아이의 심정.
어느 순간에는 교실에 두 얼굴이 존재합니다.
주사를 이미 맞은 아이들의 안도와 자랑스러운 얼굴과
아직 주사를 기다리는 아이의 절망과 두려움의 얼굴들.
마침내, 주사 맞기가 모두 끝나면,
아이들에게 주사 맞았던 기억은
즐거운 추억이자 자랑거리가 됩니다.
문뜩 주사 맞는 날이 생각이 나는 것은
그것이 흡사 우리네 인생의 죽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한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저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피해가고 싶은 생각, 잊어버리고 싶은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주사 맞던 날의 기억에서 처럼
고통으로 찡그리며 맞았던 그 주사 맞음 뒤에 있던
즐거운 추억과 자랑스러움이
우리의 죽음 뒤에도 있겠지요.
죽음의 소식을 많이 접하게 되는 요즘에
가끔은 이미 그 아픔의 순간을 잘 지내고
하나님께로 가 있을 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내 삶의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즐거운 추억과 자랑할 만한 자랑거리가 많아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 2010.02.12 Joshua95
우중충한 명절 전날 여의도 회사에서 비상대기 중에.
'Joshua >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하는 후배들에게 (2) | 2010.04.07 |
---|---|
중요한 것 (0) | 2010.04.01 |
2010 말씀 카드 (1) | 2010.01.07 |
본질적인 것에서는 (0) | 2009.12.22 |
부자 청년의 고민 (0) | 2009.11.05 |
댓글